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(문단 편집) ==== 김정숙의 사격술 과장 ==== * 김일성이 이끈 전투가 끝날 때마다 지휘관들은 김정숙에게 적들을 얼마나 소멸했는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김정숙의 탄띠에서 탄알이 몇 발 없어졌는가를 보고 김정숙이 사살한 일본군들의 인원수를 확인하군 하였다. * 김정숙은 임의의 순간에, 아무리 어려운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방아쇠만 당기면 영락없이 백발백중했다. * 1944년 3월 8일, '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'[*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이끌었다는 (날조된 군대인) [[조선인민혁명군]]의 국내 진공에 김일성이 이끌었다는 한반도의 민중들이 합세하여 무장 봉기로 일본을 무찌르고 [[8.15 광복]]을 일으킨 것처럼 선전된다. 물론 '''100% 날조이다.''']을 면밀히 준비하던 그때 수많은 명사수들이 참가한 큰 규모의 사격경기대회가 진행되였는데, 이 대회에서 김정숙은 200m 거리 반신형 출현목표, 그리고 300m 거리 구보형 이동목표 사격경기에서 출현목표와 이동목표를 번개같이 쏴 맞혔으며, 그 다음에는 선수들이 제일 힘들어 한다는, 점처럼 보이는 5개의 병을 2분 동안에 쏴맞혀야 하는 100m 거리 병쏘기 경기에서도 번개같이 병목들만 쏴 맞혔다. * 1947년 9월 28일에 김정숙은 삼일포에서 김일성의 요청에 따라, 쉼없이 움직이는 물 위에 있는 물오리떼들에게 별로 겨냥하는 기색도 없이 물오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, 그 순간 물오리는 날개를 몇 번 퍼덕이더니 물 위에 늘어졌다. * 김정숙은 매복전, 유인전, 기습전, 야간습격전 등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전술을 펼쳤다. [[https://m.monthly.chosun.com/client/news/viw.asp?ctcd=H&nNewsNumb=201503100022|#]] -('''반박''' 1) 북한이 쓴 김정숙 전기에도 김정숙이 사살한 적군 수는 정확히 적혀 있지 않다고 한다. [[시모 해위해]] 같은 진짜 명사수들이 사살한 적군 수가 정확히 알려진 것과는 대조적이다. -('''반박''' 2) 전직 CIA 요원 마이클 리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숙은 키가 작고 외모도 별로였으며, 전투에 참여하기는 커녕 빨래나 불 피우기 같은 허드렛일을 도맡아 했고, 한글도 읽지 못하는 [[문맹]]이었다고 한다.(물론 이런 말을 전한 사람들은 '''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''') 이 때문인지 김일성은 김정숙의 생전에 아내를 공식 석상에 노출시키지 않았으며, 아내를 계속 심하게 구박해왔다고 하고, 김정일이 이복동생들을 외국으로 추방한 것도 자신이 어머니를 닮았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. [[https://v.daum.net/v/M0OpSuDU5D|#]] 다만 적어도 김일성이 외부에 아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은 과장된 증언으로 보이는데, 북한측의 공식 사진에서도 김정숙이 김일성과 함께한 사진이 있다. [[https://www.joongang.co.kr/article/22176457#home|#]] * 김정숙의 사격술은 서서 쏘건, 앉아 쏘건, 보총으로 쏘건, 권총으로 쏘건 변함없이 백발백중하는 명사격술이었다. [[http://www.tongilnews.com/news/articleView.html?idxno=12414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